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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ㆍ미래ㆍ현재 중 어디에다 점을 찍겠느냐?
아름다운사회 | 등록일 : 2019-03-11
당나라 때, 유명한 스님인 덕산德山(782~865)은 어려서 출가하였다. 이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신자들이 좋아하는 <금강경> 공부를 제일 많이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덕산 스님을 <금강경>의 대강사라 하여 ‘주금강周金剛’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그런데 덕산 스님은 당시 북방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남쪽 지역 스님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다. 자신은 수십 년 동안 경전을 공부하고 있고, 수많은 출가자들이 수십번 윤회하면서 공부해도 성자가 되기 어려운데, 남쪽 지방 스님들은 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성불해서 부처가 되는 데는 문자[경전]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不立文字], 마음만 깨달으면 된다[見性成佛]는 것이었다.
덕산 스님은 어느 날 굳게 마음먹고, 걸망에 <금강경> 경전을 잔뜩 짊어지고 남방의 선사들과 한판 논쟁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덕산 스님이 몇 날 며칠을 걸어 풍주 지방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배가 고프던 차에 떡장수 할머니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스님의 모양새를 보고 말했다.
“스님, 등에 웬 짐을 그렇게 많이 지고 다닙니까?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금강경>의 대학자인데, 내 가방에 있는 것은 모두 <금강경>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스님, 그렇지 않아도 <금강경> 어느 한 구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대답해주시면, 제가 점심點心을 그냥 드리겠습니다.”
마침 배가 출출하던 차인지라, 스님은 ‘질문하라’고 했다. 점심이란 ‘마음에 점을 찍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점심이 배가 고플 때, 잠시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먹는 ‘간식’을 뜻한다. 점심이라는 뜻에 있어 중국과 한국의 쓰임이 다르다. 노파는 스님께 질문을 던졌다.
“스님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즉 ‘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스님께서는 어디에다 마음의 점을 찍겠습니까[→點心]?”
불교신자가 아닌 분들은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럴까 궁금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은 무엇이고, 과거ㆍ현재ㆍ미래 중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는 뜻이다.
불교 대학자라고 하는 덕산 스님이 노파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였다. 곧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학문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안다고 하여도 그 ‘마음’이라는 존재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없다. 과거ㆍ현재ㆍ미래라는 시간도 순간순간 찰나의 연결점이요, 점선 점선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우리 사람들은 하나의 연결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찰나[순간]에 머물러서 ‘현재의 내 마음’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과거 마음이 되어버린다. 곧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의 마음도 진실한 마음이 아니다. 곧 ‘마음’도 늘 변하는 것이요, 유동적이다. 어찌 변할지 모르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향에서 생각해보자. 살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이 쉽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쉴 새 없이 변하는 유동성이라는 성격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에게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곧 그대의 마음 또한 그렇다. 자! 그 마음이 무엇이며, 어디에 존재하는가? 한번쯤 휴대폰을 내려놓고, 명상해보자. 마음이 과거ㆍ현재ㆍ미래 가운데,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를?!